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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창밖으로, 버스 유리창 너머로, 혹은 잠시 멈춘 신호등 옆 풍경 속으로 시선을 던지면 보이는 건 거대한 콘크리트의 성채들. 층층이 올라간 아파트, 아파트, 그리고 또 아파트.
어릴 적만 해도 ‘집’이라는 단어는 사람마다 다른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누군가에겐 마당 있는 단층집이었고, 또 다른 이에게는 오래된 벽돌집이나 작은 연립주택이었다.
골목마다 다르게 생긴 집들이 있었고, 거기에는 각자의 삶의 결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하늘을 향해 똑같이 솟은 건물들, 한 동과 다른 동을 구분하기 위해 붙인 숫자와 알파벳만이 차이를 만든다.
물론 아파트는 효율적이다.
제한된 도시 공간에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고, 치안과 관리가 체계적이며, 대중교통과 생활 인프라가 가까워 편리하다.
아파트에 살면 이웃의 얼굴을 모르는 것이 당연해진다.
엘리베이터 안의 어색한 정적, 벽 하나 사이에 살면서도 서로의 이름을 모르는 현실.
과거에는 이웃끼리 마당을 나누고 고추장을 함께 담그며 살아갔지만, 지금은 층간소음이라는 말로 타인의 존재를 불편해한다.
어쩌면 우리의 선택이라기보다는, 시스템이 만든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는지도 모른다.
인구 밀집, 도시 집중, 주거비 상승, 부동산 투자 수요 등 복합적인 사회 구조가 아파트를 ‘정답’처럼 만들었다.
마치 선택지가 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태처럼.
또 하나의 이유는 ‘표준화’에 대한 집단적인 안정심리일지도 모른다.
남들과 비슷한 집에 살고, 비슷한 생활을 하는 것이 더 이상 불안하지 않다.
모두가 같은 공간에 살고 있으니 왠지 나만 뒤처진 것 같지 않아서, 비교에서 자유로워지는 듯한 착각. 그래서 우리는 자발적으로 ‘같은 집’을 선택해왔다.
하지만 그런 선택 속에서 우리는 점점 ‘자신의 공간’이라는 감각을 잃어가고 있다.
나의 취향, 나의 감성, 나의 생활이 담긴 공간이 아닌, 정해진 틀 안에서 잠시 머무는 느낌.
그래서일까, 많은 이들이 주말이면 캠핑장이나 시골로 떠나고 싶어 한다.
잠시라도 정형화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숨을 쉬고 싶어서.
아파트라는 공간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도 나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기에 더 의미가 있다.
베란다를 작은 정원으로 가꾸고, 주방 한켠에 커피 바를 만들고, 벽에 좋아하는 그림을 걸면서 나만의 색을 덧입혀간다.
그러나 그 노력이 필요한 이유는 본래의 구조가 그만큼 무채색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회색빛 아파트 숲 사이에서 나만의 색을 되묻게 한다. 나는 어떤 공간에 살고 싶은가, 그리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우리는 아마 당분간 계속 아파트에 살 것이다. 선택이 아닌 생존의 방식으로. 하지만 그 안에서도 나는 여전히 묻고 싶다.
왜 우리는 모두 같은 집에 살게 되었을까? 그리고 앞으로도 그래야만 하는 걸까?
그 질문을 던지는 순간, 익숙한 풍경 속에서도 조금 다른 시선을 갖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그 시선이, 단지 집이 아닌 '삶의 방향'을 바꾸는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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